<사상지도 베타思想地圖β> 창간에 부쳐
-아즈마 히로키

3년 전 봄, 싱가포르에서 휴가로 일주일 정도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머물렀던 곳은 싱가포르 남쪽 앞바다에 떠 있는 비치리조트 센토사섬. 비치리조트라고 하니까 괜찮게 들리지만 싱가포르 본섬과의 거리는 수 킬로미터에 불과해 도쿄로 치면 오다이바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바다에는 무수한 탱커(유조선)가 떠 있어서 해변에서 수영할 기분은 나지 않았다. 나와 아내, 어린 딸 세 사람은 오로지 호텔 풀장과 도시 관광으로 시간을 죽였다. 센토사에는 이후 2010년 봄에 대형 카지노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차례로 오픈했다. 그래서 지금은 번화함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3년 전의 시점에서는 대충 고급 호텔이 늘어서 있는, 거리나 공원 어디 할 것 없이 낡았고 일찍이 영화를 자랑했지만 쓸쓸해진 관광지라는 모양새로 느긋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적도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봄이어도 아침부터 무덥다. 매일같이 스콜이 거리를 덮친다. 테라스에서 아침을 들고 있으면 땀이 차츰차츰 가슴께를 적시기 시작한다. 남쪽의 리조트의 매력은 이런 식으로 사람의 사고력을 아침부터 용서없이 빼앗아버린다는 데 있다.

그런데 어느 아침 문득 생각이 난 게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크록스(주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샌들의 일종-옮긴이)를 신고 있다.


아니, 물론 '모두'는 아니다. 이는 기행문에 흔히 보이는 과장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 딸아이를 포함해 꽤 많은 아이들이 크록스 특유의 샌들을 신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딸아이가 아마도 중국 본토에서 온 관광객의 아이였을 성싶은, 검은 머리에다 약간 나이도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어설픈 걸음걸이로 가까이 다가갔다. 딸아이는 크록스를 신고 있다. 남자아이도 크록스를 신고 있다. 자세히 보면 주위 어른들도 신고 있다. 검은 머리 소년의 어머니나 할머니일 것 같은 나이 든 여성이 딸아이의 발치를 가리키며 중국어 억양이 섞인 영어로 우리 아이랑 같은 신발을 신고 있네요, 라고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어디에서 샀냐고 물어보기에 나는 하와이라고 대답했다. 2007년 봄, 크록스는 아직 일본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그 샌들을 손에 넣은 것은 그 전해에 갔던 하와이의 작은 쇼핑몰에서였다. 그때는 설마 이런 별나게 생긴 합성수지 샌들이 세계적으로 유행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중국인 여성과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크록스를 아시아에서도 신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가벼운 현기증이 몰려왔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싱가포르는 국제도시로서 센토사에도 세계 각지에서 숙박객이 모인다. 영어, 독일어, 광둥어, 한국어, 실로 다양한 말들이 테이블 위를 오간다. 그리고 가족 단위가 많다. 그들은 물론 가난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류층도 아니다. 1년에 몇 차례, 수천 킬로미터, 수만 킬로미터를 여행하여 가족과 함께 이국의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글로벌한 상위중산계급upper middle class이다. 셔츠도, 하의(下衣, bottom)도, 가방도, 구두도 모두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브랜드이며, 세계 어디에서도 구입 가능하면서 그렇게 고가도 아니지만 결코 싼 물건일 리도 없는 상품들을 몸에 걸치고 있다. 그들의 (이런 말이 아직 적절하다면) 계급적 아이덴티티는 아마도 그러한 라인업이 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정치체제, 다른 종교, 다른 문화 안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서로 의사소통(意志疎通, communication)조차 할 수 없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단편적인 영어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같은 소비행동, 이른바 쇼핑이라는 공통언어가 다른 모든 차이를 은폐하고 그들을 서로 깊게 결속시키고 있다. 
더위 때문에 멍해진 머리로 나는 문득 전세계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이분되어 역사는 양자의 절대적인 투쟁에로 나아간다고 호소했던 어느 유명한 사상가의 이름을 상기했다. 과연 19세기에는 그것이 진리였을 것이다. 아니, 냉전이 붕괴하기 전까지는 부분적으로 진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저들은 자본가일까 노동자일까. 내게 말을 걸어온 중국인 여성의 계급적 이해(利害)는 무엇일까. 쇼핑이 받쳐주는 글로벌한 계급의식에 관하여 마르크스라면 어떤 말을 내놓았을까.
그런 것은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완전히 무시했을까.


귀국 전날 우리 가족은 이토 도요오(伊東豊雄, 1941~, 일본의 건축가-옮긴이)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대형 쇼핑몰 비보 시티Vivo City로 나섰다. 비보 시티는 물결 모양의 디자인이 인상적인 거대 건축물이다. 센토사와 싱가포르 본섬을 잇는 다리의 본섬 쪽, 하버 프런트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매일같이 택시로 그 주위를, 혹은 곤돌라로 상공을 통과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기껏 휴가를 왔는데 쇼핑몰을 둘러볼 리도 없고 가보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는 냉방이 잘 된 비보 시티를 지나 대신 차이나타운과 리틀 인디아, 아랍 스트리트, 카통을 카트를 밀면서 걸어다녔다.

관광객이 관광에서 원하는 것은 엑조티시즘exoticism이다. 그러므로 관광객은 쇼핑몰을 외면하고 전통이 있는 역사적인 시가지로 발을 옮긴다. 엑조티시즘을 원하는 마음이 타락인지 아닌지는 여기에서 따지지 않을 것이다(원래 사람은 타락하기 위해 리조트에 가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쇼핑몰은 글로벌하고 시가지는 로컬이므로 따라서 관광객은 전자에서는 익히 알고 있는 지겨운 광경밖에 마주치지 못하고 후자에서야말로 타자와 만난다고 하는 이분법이다. 우리도 또한 그 이분법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이 이분법은 진실일까. 쇼핑몰은 정말로 세계 어디나 같은 것일까. 물론 쇼핑은 한편으로는 앞서 나 자신이 쓴 것처럼 정치의 차이를, 종교의 차이를, 문화의 차이를 모두 고르고 매끄러운 표면으로 만들어버리는 롤러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균질한 표면에는 역시 어쩔 수 없는 지방성이, 다시 말하자면 다양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사실은 이 '한번 롤러를 통과한 다양성' 쪽이 관광지화되고 테마파크화된 '역사적 시가지' 보다 훨씬 강인한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역설을 비보 시티 3층, 푸드 리퍼블릭이라고 이름 붙여진 평범한 푸드코트를 들른 순간 깨달았다.
푸드 리퍼블릭은 세계 어디나 있는 테마파크형 푸드코트이다. 일본으로 말하자면 다이바 잇초메 상점가나 신요코하마 라멘박물관과 같은 것으로서 싱가포르의 전통적인 노점상을 본뜬 가게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실내 장식에 둘러싸인 채 줄지어 있다. 그러므로 이는 어디에나 있는 낯익은 광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광경에 강한 충격을 받은 까닭은 내가 이미 진짜 노점상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싱가포르 관광에서 무릇 길거리 음식은 인기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시내에는 '호카즈'라고 불리는 노점상 동네가 여럿 있고 관광객은 반드시 그중 어딘가를 가봐야 한다고 가이드북에 쓰여 있다. 그래서 나와 아내도 역시 가이드를 따라 몇 군데를 들러보았다. 그런데 그 현실의 노점상 동네는 어떠하였을까. 손님은 관광객뿐이거나 혹은 노인뿐이어서 싱가포르 사람의 생활에 가깝게 다가가 있다는 실감 등은 전혀 없지 않았는가. 그에 비교해 이 광경은 어떠한가. 과연 이 노점상 동네는 확실히 가짜다. 스콜도 내리지 않으며 음식물 쓰레기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는 현실의 손님이 있다. 실제 노점상 동네에는 없었던 학생이나 커플, 가족 단위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좁은 벤치에 서로 붙어앉아서 사테(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먹는 꼬치구이 요리-옮긴이)를 입에 물고 있거나 박쿠테(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먹는 고기가 들어간 냄비요리. 국물이 있다-옮긴이)를 볼이 미어지도록 먹고 있거나 라쿠사(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먹는 면 요리-옮긴이)를 후루룩거리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환경이 전부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의 훈김이나 떠들썩함은 틀림없는 진짜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히려 이 시뮬라크르야말로 진짜인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내가 만나고 싶은 현실은 비보 시티 쪽에 있었다.

쇼핑은 역사와 문화의 차이를 균일하게 만들고 지금까지의 진짜를 가짜로 바꾸며 가짜를 진짜로 바꾼다. 예를 들어 쇼핑몰이 배제와 안전security의 윤리 위에 만들어진 허구였다고 해도 우리의 현실은 이미 그 허구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푸드 리퍼블릭에 들렀던 우리는 타이밍이 나쁘게도 배가 불렀기 때문에 맛을 보지는 못했다. 나는 그것을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푸드코트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각설하고, 이 원고는 <사상지도 베타>라는 새로운 언론지의 창간에 부치기 위해 쓰고 있다. 나는 이 잡지의 편집장이자 발행인이다.
그렇다면 상식에 비추어볼 때 나는 여기에서 일본의 현재 언론상황을 조감하면서 이 잡지가 그 안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며 어떠한 목적을 갖고 창간되었는가, 일종의 선언문을 써야만 할 것이다. 특히 이 잡지가 창간된 2010년은 작년의 정권교체에 뒤이어 정치가 크게 변동하고, 다른 한편으로 트위터와 전자서적의 대두, 인터넷 동영상의 보급 등 언론을 둘러싼 상황도 또한 격변이 계속되어 전기가 된 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러한 [선언문 식의-옮긴이] 이야기는 특히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반년 전, 창간의 말을 목차에 넣었을 때는 나 자신이 선언문을 상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전혀 다른 타입의 글을 쓰고 있는 까닭은 사상의 문맥에 대하여 말하는 사상, 비평의 문맥에 대하여 말하는 비평이라는 언론의 그 자기모순적인 태도야말로 이 잡지가 먼저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사상과 비평에, 그리고 언론 일반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야말로 이 잡지를 꼭 읽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이 잡지가 왜 창간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그런 것은 전혀 몰라도 괜찮다. 무릇 무지는 사색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박식함에 기초한 오만이야말로 이 잡지의 적이다. 생각해보면 이 나라의 사상과 비평은 어느새 그 역사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독자만을 대상으로 삼아 극히 일부에게만 통하고ニッチ 마니악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정치든 경제든 문학이든 세상에 나오는 평론의 많은 수는 당사자와 동업의 전문가, 혹은 구글이나 뒤져서 매사 헐뜯고 참견하며 잔소리하기 좋아하는 아마추어 들이 '깊이 파고들지 않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아서 놀랄 만큼 방어적이고, 내부의 '분위기'만을 반영하여 쓰는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러므로 일반 독자는 그와 같은 언론의 태도에 진절머리를 내거나 혹은 단지 단순한 호감을 가질 뿐이며 언론 전체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잡지는 그러한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해 창간되었다. 언론을 다시금 세계로 열기 위해 창간되었다.

따라서 나는 여기에서는 이 잡지의 목적을, 이라고 하기보다 창간의 기저에 있는 사상을 직접적으로, 그렇지만 누구에게라도 열려 있는, 아무런 전제지식 없이 읽을 수 있는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행착오의 결과가 앞에 쓴 짧은 싱가포르 체재기이다. 이 시도가 성공하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내 글은 아직 멀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글은 좁디좁은 문단이나 논단의 근래 수년간의 동향을 통틀어 동업자를 전문용어로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는 진부한 글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의 네트워크가 변화시킨 21세기의 세계. 새로운 정치. 새로운 계급. 새로운 신체와 새로운 세계관. 그리고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글로벌하며 지역적인 새로운 리얼리티. 굳이 추상적인 말로 요약하면 <사상지도 베타>는, 이 광경에 직면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창간되었다.

일본의 근대는 일본어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서는 오랜 동안 지(知)의 중심을 문학이, 언론의 중심을 문예비평이 담당해왔다. 그러나 그 빛나는 역사는 1970년대에 끝을 맞았다. 메이지 시기에 만들어진 소설과 평론의 언어는 고도경제성장을 끝내고 서구화의 프로그램을 마친 순간에 일본 사회의 리얼리티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소설에서는 1977년에 아라이 모토코(新井素子, 일본 SF작가-옮긴이)가 나타나 라이트노벨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1979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등장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평론에서는 그들과 같은 개혁가가 나오지 못했다. 라이트노벨과 하루키의 출현과 같은 시기, 겨우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썼지만 그는 문예평론의 종말을 선언했을 뿐이었고 새로운 문예평론의 형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메이지 시기의 작가들이 시작한 평론의 프로그램은 새로운 프로그램에 인계되고 업데이트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30여 년, 새로운 시대의 탄생과 사회에 직면한 언론은 이 나라에서는 맹아상태인 채로 계속 잠자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두드려 깨운다.
그리고 이 나라의, 이 세계의 '지금'에 대하여 올곧게 말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을 만든다.
이것이 이 잡지의 사명이다.

마지막으로 <사상지도 베타>라는 좀 특이한 잡지 이름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려 한다.
이 잡지는 2008년부터 2010년에 걸쳐 나와 기타다 아키히로(北田暁大, 사회학자. 도쿄대학 대학원 준교수-옮긴이)가 책임 편집한 사상지, <사상지도>의 후속 잡지이다. 따라서 '베타β'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제2기'라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나는 그와 동시에 소프트웨어의 '베타판'이라는 함의와, 또 이건 다소 말놀이의 혐의가 있지만 '베타ベタ'(사사키 아쓰시의 <일본 현대 사상>[송태욱 옮김, 을유문화사, 2010]을 참조했을 때 이 말은 '메타' '네타'와 함께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아즈마 히로키나 미야다이 신지가 자주 사용하는 말로서 메타란 '바깥쪽'에서 말하는 것, '네타'란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 것을 말해 보이는 것, '베타'란 메타도 네타도 결여한 단순히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을 뜻한다. pp.292~93. -옮긴이)라는 말의 울림을 겹쳤다.

많은 독자들은 언론에 완성품을 바란다. 그리고 또한 우직한 사고를 경멸하고 화술의 교묘함을 존중한다. 그렇지만 <사상지도 베타>는 그 점에서는 차라리 미완성의 조잡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ベタ한, 종내는 어리석을만큼 고지식하고 잘난 체하지 않는 언론의 장을 목표로 삼고 싶다. <사상지도 베타>라는 이름에는 그러한 바람을 담고 있다.

크록스처럼 국경을 넘어, 푸드 리퍼블릭처럼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말소시키는 사상. 그것이 나의 이상이다.

東浩紀/『思想地図β』/コンテクチュアズ(contectures, LLC.)  

원문출처: http://contectures.jp/shisouchizu-beta/sa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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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맥이 이상하거나 오역한 곳은 지적해주시면 감사히 반영하여 수정하겠습니다.

Posted by Gigi_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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